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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조병준(趙秉準)선생
관리자
조회수 : 1976   |   2011-06-11


 

◈ 서간도 대한독립단 총참모·내몽고항일운동개척자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의병투쟁을 비롯하여 서간도 대한독립단 지도자, 임시정부 연통제 평북독판부 독판, 내몽고 독립운동 개척자로서 폭넓게 독립운동을 이끈 조병준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의 자는 유평(幼平), 호는 국동(菊東)이다. 평북 의주군에서 출생하여 3세 때 부친에게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운암 박문일의 문하생으로 수학했다.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유인석 의거에 호응하여 평안북도 창성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던 중 광무황제의 특사로 출옥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재차 의병을 일으켜 평북 창성의 일본헌병대를 습격하였으나 일제의 병력이 증강되어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렵게 되자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하였다.

관전현과 환인현 등지에 근거를 마련하고 의병장 전덕원, 박장호, 이진용, 조맹선, 백삼규 등과 함께 농무계와 향약계 등을 조직하여 교민들의 식산(殖産)과 교육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림단과 포수단 등을 주축으로 만주 유하현 삼원보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고 총참모에 선임되어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백삼규, 총단장 조맹선, 부단장 최영호 등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 후 동 단체가 양분되자 민국독립단 도총재로 활동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지방행정 조직인 연통제 평북독판부 독판에 선임되어 평안도와 황해도에 89개 지단을 설치하는 등 조직 확대에 힘썼으며, 1920년에는 임시정부 직할기관인 광복군 참리부장으로 활동했다.

1923년 통의부 통의부장이 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일제의 만주침략을 예견하고 동지 및 가족 80여 명을 인솔하여 내몽고 수원성 포두현 중탄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도산 안창호가 미주 동포에게서 마련하여 지원한 이주자금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주선으로 농지 약 60만 평을 임차하여 배달농장을 세우고, 배달학교와 대종교 수광시교당(綏光施敎堂)을 설립하였으며, 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함과 아울러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선생은 이곳에 의민부를 설립하여 배달농장의 수입금으로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1.10.2. 포두현 중탄에서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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