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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독립운동가 조완구(趙琬九)선생
관리자
조회수 : 1803   |   2011-04-01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킨 작은 거인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완구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임시정부 내무부장과 재무부장 등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민주정치의 기초를 다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중심으로 27년 동안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세계 독립운동사에서 자랑할 만한 일이다.

20세기를 전후하여 세계 8할에 가까운 민족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민족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완구 선생은 서울 계동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1902년 한성법학전수학교를 마치고, 내부 주사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국권을 침탈당하자, 관직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시종무관장 민영환의 자결과 처남인 금산군수 홍범식의 경술국치로 인한 자결 순국도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선생은 대종교의 간부로 활동하다가 1914년 북간도로 망명,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국’임을 선포한 독립선언이 발표되자, 북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생은 이동녕·조성환·김동삼·조소앙 등과 함께 상해로 갔다.

민족의 대표기구인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한 대표 인사를 29명으로 구성하였는데 선생도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먼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하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이후 27년간 임시정부와 함께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수립 당시 각원들이 취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무원 위원으로서 임시정부의 활동 방향을 밝히는 등 임시정부의 기초를 세웠다.

이후 1921년 내무장에 선임된 이래 줄곧 내무부의 책임을 맡았고, 1944년 좌우연합정부가 구성되었을 때에는 재무부장을 맡았다.

이와 더불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그리고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의 주요 간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임시정부가 어려울 때 그것을 지켜온 상징적 인물이다.

수립 초기 임시정부가 대통령 이승만의 탄핵문제를 둘러싸고 파란에 휩싸였을 때 선생은 임시정부를 지켰다.

또한, 1930년대 중반 민족혁명당 결성을 계기로 무정부상태에 빠졌을 때에는 김구· 이동녕· 송병조· 차리석 등과 함께 다시 임시정부를 일으켜 세웠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속한 27년 동안 한시도 임시정부를 떠나지 않았다.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끝까지 지켜낸 대표적인 인물로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27년 동안 임시정부를 지켜낸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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