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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 최현배 선생 선정
관리자
조회수 : 1842   |   2010-10-05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최현배 선생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94년 10월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에서 최병수의 맏아들로 태어난 최현배 선생은 1910년 관립한성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재학 중엔 보성학교 국어강습소에서 주시경의 강의를 들으면서 애국사상을 정립했다.

1915년 관립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연구과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철학과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일본 유학 중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민족계몽의 필요성을 절감한 선생은 귀국 후 1920년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원으로 부임해 우리말을 가르치고 연구했고, 우리글의 문법체계를 바로 잡을 목적으로 "우리말본"의 초고를 집필했다.

192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동아일보에 "조선민족 갱생의 도"를 66회나 연재, 우리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실천적 이상주의를 고취시켰다.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에도 참여해 기관지 "한글" 창간 및 한글날 제정에 적극 힘쓰고, 1929년에는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의 준비위원 및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33년까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최 선생은 1937년 집필해오던 "우리말본"을 출판해 식민통치 하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전념했다.

1938년에는 일제가 조작한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돼 옥고를 치르며 연희전문학교 교수직에서 강제로 해직됐다.

해직 이후 최 선생은 한글을 역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연구한 "한글갈"을 집필하기 시작해 1942년 출판하는 등 연구와 저술활동을 계속했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뒤 한국인에 대한 민족말살정책을 더욱 강화하면서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해 최 선생을 다시 검거, 심한 고초를 겪게 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은 최 선생은 미군정청 편수국장, 문교부 편수국장 등을 역임하고, 연세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1970년 작고했다.

정부는 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10월 한달 동안 최 선생이 집필한 "우리말본" 등 관련자료 17점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전시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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