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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BBS 유용화의 아침저널
관리자
조회수 : 2110   |   2008-04-07


아침저널: 유용화 시사 평론가 이해찬 전 총리와 연결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해찬 전 총리: 안녕하십니까? 아침저널:말씀 오래간만에 듣는 거 같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 네, 반갑습니다. 아침저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자택에 계신가요? 아니면 활동을 많이 하시나요? 이해찬 전 총리: 네, 요즘 연구소를 만들려고 광장 연구재단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널: 광장 연구소라는 것은 어떤 것이죠? 이해찬 전 총리: 주로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 진보적인 가치 이런 것들을 반영할 수 있는 정책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연구소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널: 최인훈 선생의 광장이라는 소설, 포럼과 연관이 좀 되는 모양이죠? 이해찬 전 총리: 관계되는 건 아닌데요. 원래 지난 번 경선 때 하던 모임 이름이 광장이어서 이름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널: 지난 1일입니까? 운암 김성숙 선생님이요. 상당히 일제 시대 진보적인 독립운동가로 저희들이 알고 있는데요.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회 3대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축하드리구요. 취임하시게 된 배경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해서 먼저 간단하게 얘기를 해주시죠. 이해찬 전 총리: 운암 선생님이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아주 몸을 바쳐서 굉장히 열심히 살아오신 그런 분이세요. 특히 승려출신 독립운동가로서 드믄 분인데,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서 기념사업회를 해왔는데 저한테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아침저널: 그럼 전에 정치하실 때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해찬 전 총리: 원래 이 분은 ‘아리랑‘에 보면 ’김산‘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데 장기덕 선생님의 사상적 스승이라고 할 수가 있죠. 장기덕 선생님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이 분과 많은 대화를 하고 같이 활동을 하셨던 분이거든요. 아리랑에는 붉은 승려 김충창이라고 나오는데 그 때부터 그 분에 대해서 제가 조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기념사업회를 맡으면서 관련된 자료를 보니까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도 사회적으로 빛을 못 보신 그런 분이시라서 앞으로 이 분의 뜻을 선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침저널: 그 동안에 김성숙 선생님이 잘 알려지지 못한 이유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이해찬 전 총리: 아무래도 이제 우리가 해방이 되면서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임정에 국무의원을 하신 분이고 2차 환국하실 적에 같이 돌아오신 분인데 돌아오셔서도 단정을 반대하시고 혁신쪽 운동을 많이 하셨어요. 그러다보니까 이승만 쪽에서도 음해를 많이 받으셨고, 박정희 대통령 때도 반공법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감옥살이도 하시고. 그래서 당시 일종의 이데올로기 적인 음해를 많이 받아서 이런 혁신계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많이 안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독립운동 할 때 헌신적으로 하셨으면서도 그런 평가를 제대로 못받다가 이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건국 훈장을 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이 2004년에 안장이 되었거든요. 아침저널: 몇 년전이네요. 이해찬 전 총리: 그러니까 냉전 시대에는 그 분들에 대해서는 이념적인 핍박이 아주 많았었죠. 아침저널: 그런데 법명이 태허라고 그러는데. 태허란 게 어떤 뜻인가요? 이해찬 전 총리: 저도 태허란 뜻이 무슨 의민지 잘 몰라서 김성숙 선생님이 출가하신 봉선사를 얼마 전에 가서 조실 월운 스님을 만나서 여쭈어보았어요. 그랬더니 클 태 자에 빌 허 자인데 큰 허공이라는 뜻인데 큰 허공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의미를 갖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마 선생님이 좌우 합작을 하고 민족 분단을 반대하는 그런 통 큰 민족역사관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것도 이름에서 유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침저널: 불교철학적인 의미도 있는 거 같구요. 이해찬 전 총리께서 운암 선생님의 어떤 업적이 있는지 소개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해찬 전 총리: 일찍이 출가를 하셨다가 독립운동 하신다고 중국으로 건너가셨어요. 중국 건너가셔 가지고 여러 가지 항일 운동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에서 초기에는 행동가로서 많이 활동하셨습니다. 의열단의 선전부장을 맡아가지고 일본 항일 운동을 하면서 행동하는 쪽으로 많이 활동을 하셨구요. 이어서는 이론적으로도 글을 많이 쓰시고 혁명이라는 잡지를 발간해 중국이라든가 여러 항일운동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상적인 이론을 많이 정립을 하시구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분으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고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군사주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그런 활동을 쭉 해오셨고 해방 후에 환국을 하셔가지고도 남북이 서로 갈라지면 안되기 때문에 남북을 하나로 합작하는 공조하는 그런 활동을 일관되게 해오셨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어 이 분들의 꿈을 이루진 못했는데 일관되게 청년 시절부터 노년까지 남북이 하나가 되는 그런 활동을 쭉 해오신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그런 분이시죠. 아침저널: 그럼 운암 선생의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얘기를 들었는데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습니까? 이해찬 전 총리: 이 분이 주로 중국에서는 활동하시고 광동성의 광주에 있는 중산대학에서 교수도 하시고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광주에 있는 중산대학과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협의가 되어 있는데 예산이 얼마냐 가능하냐는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이 분이 출가하신 봉선사에서 역시 기념관을 하려고 할 생각이신데 경기도 북부의 불교 조계종 본사거든요. 거기에서 스님들을 뵈니까 기념관 건립할 부지를 제공할 뜻을 밝히시더라구요. 건축비같은 것을 마련해야 되는 문제가 있어서 좀 더 잘 검토해가지고 앞으로 청년들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독립운동하신 분들이 뜻을 잘 교육할 수 있는 그런 기념관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널: 건립에서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거든요. 이해찬 전 총리: 예산 문제가 따르죠. 아침저널: 운암 청년단 장학 사업 얘기를 좀 해주시죠. 젊은이들에게 좋은 기회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던데요. 이해찬 전 총리: 네. 청년단이 두 번에 걸쳐서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방문을 하고 같이 중국 학생들하고 토론도 하고 이렇게 두 번을 했습니다. 이번 7월에도 3번째 할 계획인데요.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장학금도 일부 소액이지만 지급을 하고 그렇게 해왔는데 이 학생들이 갔다 와서 쓴 글들을 보니까 본인들에게도 아주 새로운 역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마음자세를 다듬는데도 많이 도움이 되는 좋은 계기였던 거 같아요. 아침저널: 이해찬 전 총리께서 생각하시기에 운암 선생이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이해찬 전 총리: 운암 선생님의 뜻은 분단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고 했던 겁니다. 일제 때는 독립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해방 후에는 남북 분단을 어떻게해서든지 막아보려고 했던 게 가장 소중한 가치였는데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독립은 되었지만 분단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그래서 민족적 갈등이 원천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민족화해 정신을 잘 살려나가야 한다는 것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인 거 같습니다 . 아침저널: 이해찬 전 총리님 근황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앞으로 이런 사회활동에 주력하실 생각이신가보죠? 이해찬 전 총리: 네, 정치는 이제 정리를 했습니다. 아침저널: 아예 안하시려구요. 이해찬 전 총리:(웃으며) 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정리를 했구요. 앞으로 우리 민족사의 새로운 진로 이런 것을 위한 활동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널: 이틀 뒤에 투표는 하실 생각이시구요? 이해찬 전 총리: 물론 투표는 해야죠. 아침저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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