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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관리자
조회수 : 1978   |   2018-01-29


◎ 공훈록

일제의 차별, 좌절된 청년 무관의 꿈

○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선생은 시대의 전환기인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운영하는 육군무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했다. 1904년 일본은 강제로 체결한 한일의정서에 근거하여
육군무관학교를 통제했다. 그리고 러시아를 통해서 일본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함경도 출신 학생들을 차별했다. 무관이 되어 조국 부강을 염원했던 선생의 꿈은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조선총독부 종교탄압에 반발, 민족교회인 대한성리교 설립

○1905~6년경 기독교인이 되었다. 선생이 기독교에 입교한 것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을 통해서 무너져 가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1907년 훈춘(琿春)으로 망명한 선생은 민족종교 단체인 대한성리교(大韓聖理敎)를 만들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포교규칙(布敎規則)을 공포하자, 이에 반발하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3 · 1운동에 호응하여 독립군 단체인 대한신민단 조직

○스스로 무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청년들을 독립전사로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1914년 이동휘와 함께 중국에서 설립한 동림무관학교를 들 수 있다.

○독립전쟁을 통해서 독립을 달성하려는 선생의 노력은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결성으로 이어졌다. 3 · 1운동에 호응하여 결성된 대한신민단에서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기서 보여준
그의 헌신은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한중(韓中) 연대를 통해 일본제국 타파 시도

○1925년 2월 중국 전역에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목격한 선생은 한중연대를 통해 일본제국을 타도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1924년 윤자영과 함께 상해에서 조직한 상해청년동맹
(上海靑年同盟)을 통해서 중국 학생계와 연대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습을 당하여 부상을 입게 되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 활동 전개에 한계를 절감한 선생은 연해주로 갔다. 1933년 빨찌산위원회에서 항일운동을 하였지만, 소비에트 연해주위원회의 탄압대상이 되었다. 모스크바로
피신한 후 더 이상의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가 없었다. 선생은 러시아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을 하지 못한 채 1969년 8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김규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김규면 선생 약전 요약

선생은 연해주와 만주 일대에서 민족 종교 단체를 결성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항일무장투쟁을 하였다. 1919년에는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을 창설하여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첫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에 참가하여 반제국주의 투쟁에 앞장섰다.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선생의 투쟁은 러시아와 중국 혁명에서도 빛을 발했다. 기독교
선교사에서 항일독립군의 지도자로, 그리고 반제국주의 혁명가로서 활약한 선생의 자취는 러시아·만주지역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웅변해 주고 있다.

선생의 독립운동은 만주와 연해주, 상하이 등과 같이 광범한 지역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지만, 항일무장투쟁이라는 일관된 노선에 의해 추구되었다. 그렇다고 선생은 독립군 대장과 같이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항일무장투쟁의 일선에서 활약하던 최이붕(崔以鵬)은 선생을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위에만 있던’ 인물로 평가한 바도 있다. 그러나 선생이 지도적 위치에 머물기만
한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부대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부대를 조직했으며, 독립군 부대의 활동에 필요한 인적 및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누구보다 앞장 서 나간
지도자였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청년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했고, 러시아 내전이 발발 했을 때는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일본 제국주의와 맞설 군대를 조직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자유시참변으로 독립군 통합운동이 좌절된 후에도 다시 군대를 정비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 나갔고, 러시아 내전 종결 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제국주의 타도를 위한 부대 조직에 앞장섰다. 선생은
무장투쟁의 부대를 만들며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지도자였으며, 일관되게 제국주의 타도와 약소민족의 해방을 위해 힘을 기울인 반제국주의 전선의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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