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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촌로 개명 동의 얻기까지, 9천여 주민 방문 노력 있었다
관리자
조회수 : 2567   |   2019-02-14


1월31일 오후 성북구청 지적과 직원들이 구청 건물 사잇길 고려대로 5길 도로표지판을 가리키고 있다. 성북구는 친일 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의 이름을 딴 도로명 '인촌로'를 지난해 주소 사용자 과반수인 5천여 명의 동의를 얻어 '고려대로'로 바꿨다.

(왼쪽부터) 송진솔 주무관, 송한철 과장, 한원희 팀장, 강상아·이진희·박종애·김원섭 주무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 친일행위자 도로명 변경 실행한 성북구청 지적과 지적재조사팀

보문역~고대앞 사거리 1.21km 친일 행위 대법원 확정 판결 계기로 이승로 구청장 개명 발벗고 나서 담당 과장 "평생 잊을 수 없는 보람" 

 

“친일행위자 도로명 개명은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꼭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1월31일 오후 성북구청에서 만난 송한철 지적과장과 지적재조사팀원(한원희 팀장, 강상아·송진솔·김원섭 주무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지적재조사팀은 지난해 12월 친일행위자 인촌 김성수의 호를 딴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꾸어냈다.

지적재조사팀은 지난해 9월 ‘30일 안에 인촌로 주소 사용자 9천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의 동의서 받기’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받았다. 처음엔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지적과 전 직원이 함께 나서 결국 해냈다. 노고를 인정받아 지난 연말엔 구청의 월별 우수과제로 뽑혔고, 지난달엔 지적과 직원 모두 특별휴가 이틀을 포상으로 받았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에서 고대앞사거리까지 1.21㎞의 도로다. 1991년 서울시 지명위원회에서 ‘이공대 뒷길’이라 하던 도로명을 고려대 설립자이자 <동아일보> 창업주인 김성수의 호를 딴 ‘인촌로’로 정했고, 2010년 도로명주소법 시행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항일운동가 단체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법적 근거 없이는 개명이 어려웠다.

성북구가 도로명 변경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친일 행위 인정의 대법원 판결(2017년 4월)로 지난해 3월 국무회의에서 인촌의 서훈이 박탈되면서부터였다. 항일독립지사선양단체연합과 고려대학생회와 만나고, 법적인 절차를 검토했다. 신임 이승로 성북구청장도 “역사 바로 세우기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발 벗고 나섰다. 부임 한 달 만에 구청장 직권변경 추진 계획안을 마련했다. 도로명주소위원회 심의와 주민설명회, 네 차례의 현장 스티커 설문조사를 거쳐 ‘고려대로’로 개명을 추진했다.

도로명을 바꾸려면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공고일로부터 30일 안에 주소 사용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인촌로 주소 사용자(가구주, 건물 소유자, 사업자 등록인, 외국인, 법인 대표자)는 모두 9118명이었다. 1차로 우편물을 보낸 뒤, 2차로 집집이 찾아가 동의서를 받았다. 지적과 직원 28명과 조사요원 12명이 함께했다. 한 달의 기한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일주일 동안 사전 전산 작업을 꼼꼼하게 했다. 동의서 명부 30권을 만들어 현장 활동에 나섰다.

동의서를 받는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우편, 팩스, 전자우편으로도 동의서를 받아도 되지만 열에 아홉은 직접 만나야 했다. 직장인, 대학생 등이 사는 다가구, 원룸이 많은 동네다 보니 저녁이나 주말에 가야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주민들에게 불편을 덜 주려 저녁 9시 이전, 주말은 점심 이후부터 저녁 8시 전에 찾았다. “집집이 평균 5번 이상을 가야 했다”며 “집에 있어도 문 열어주는 사람이 적어 문 앞에 서성이거나, 택배원이나 배달원이 오면 따라 들어간 적도 많았다”고 한원희 팀장이 털어놨다. 송진솔 주무관은 “낯선 남자들은 문을 잘 열어주지 않아 남녀 2인 1조로 다녔다”고 했다.

600여 명의 외국인 주민은 영어를 잘하는 김원섭 주무관이 맡았다. “처음엔 설명이 힘들었지만 도로명 변경에 초점을 맞췄더니 대부분 동의를 했어요.” 강상아 주무관도 “한 중국인은 처음엔 서명을 꺼리다 친일행위자 도로명이라 바꾸려 한다니 반색을 하고 바로 동의해줬다”고 웃으며 말했다. ‘굳이 세금 써가며 바꿔야 하나’며 반대 표시를 한 주민들은 640명쯤 됐다.

팀원 모두가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몸도 힘들었다. “계단이 많고 비탈길인 동네를 하루 만 보 이상을 걷다 보니 몸무게가 3㎏ 빠졌다”고 송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말했다. 바람이 차가웠던 날도 많아 꽁꽁 싸매고 다녀도 금세 손발이 얼었다.

그래도 응원해주는 주민들이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단다. “좋은 일에 힘써줘 고맙다.” “옳은 일에 동참하겠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다.” 등 응원의 말을 주거나 동의서 회신 봉투에 홍삼 스틱 한 봉지를 붙여놓은 주민도 있었다. 김장을 담그던 주민은 김치를 먹고 가라고 내놓기도 했다.

도로명을 바꾸면 잇따른 작업도 적잖다. 개별로 쓰고 있는 도로명주소도 따라 바꿔야 한다. 법에 따라 도로명주소 변경 안내도 우편으로 알리고 방문 고지를 해야 한다. 고지문은 직접 전달하지 못하면 우편함에 넣거나 대문에 붙여놓는다. 오는 3월28일께 도로명주소 변경 고시로 최종 마무리된다. 이날 건축물대장 등 각종 공적 장부와 시스템의 도로명주소도 함께 바뀐다.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도 바꾼다. 현장 활동을 하면서 표시해 둔 골목길이 어두운 지역에는 조명형 도로명판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올해 연말 30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송 과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뜻깊은 일을 해내 보람을 느낀다”며 “이번 도로명 변경 과정을 백서로 정리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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