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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임시정부 100년.. "한·중 우의 앞으로도 100년 이어가길"
관리자
조회수 : 2175   |   2019-07-14


9일 오후 중국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앞에서 한중우호카라반 대표단원 100명이 애국가를 제창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임정 요인들이 1945년 같은 장소에서 환국 기념사진을 촬영했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앞줄 왼쪽부터 장재복 공공외교대사, 서은지 한중우호카라반 단장, 장제학 주청뚜 총영사. 충칭=외교부 제공  

 

지난 9일 중국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충칭의 계단(백범의 계단)’. 충칭에서 상하이까지, 임시정부 100년의 역사를 기려 그 흔적을 따라 역순으로 답사를 떠난 한중우호카라반 100명의 대표단이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삼창을 했다. 1945년 11월3일, 귀국을 앞둔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 기념사진을 촬영한 그 장소에서 그날의 만세삼창을 재현한 것이다. 

 

외교부가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한중우호카라반 국민대표단 소속 100명의 청년들은 9일 충칭 임시정부를 지나 14일 항저우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의 흔적을 순례하는 일정을 계속하고 있다. 

 

 

10일 오후 중국 충칭의 한 호텔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한중우호카라반 국민대표단이 간담회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주경란 선생 조카 목월 선생, 김은충 선생 외손 정홍 선생, 유진동 선생 4남 유수동 선생, 이달 선생 장녀 이소심 선생. 충칭=외교부 제공

10일 오후 중국 충칭의 한 호텔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한중우호카라반 국민대표단이 간담회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주경란 선생 조카 목월 선생, 김은충 선생 외손 정홍 선생, 유진동 선생 4남 유수동 선생, 이달 선생 장녀 이소심 선생. 충칭=외교부 제공

27년의 역사만큼 각 지역 임시정부의 보존 상태는 다양하다. 1940년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 독립운동의 꽃을 피웠던 충칭 시대 청사를 보고 대표단은 “이렇게 큰 임시정부 청사는 처음 본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다음 도시인 광저우에서는 중국 민간인의 다세대 살림집으로 쓰이고 있는 1938년 중일전쟁 격화 시기의 청사 동산백원의 가슴 아픈 현재 모습도 목격했다. 동산백원은 2018년 2월 중국 정부가 보호하는 민국건축물로 지정됐지만 한국 임시정부 청사였다는 표식은 세워지지 못했다.
 
이번 행사는 척박한 환경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임시정부의 역사를 반추함과 함께 이들의 흔적을 관리하고 있는 중국 정부와의 협력과 우호 증진을 위해 기획됐다. 사실상 다수 임정 유적지가 중국 정부의 관리 하에 있다. 광저우에서는 양국 청년들이 한·중 공공외교대화를 통해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토론을 열고, 창사에서는 해방 후 중국에 남아 농업 발전에 힘써 남·북·중 3국에서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유자명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 류전휘 선생, 김영근 주우한총영사, 저우쉐샤오 후난농업대 총장과 청년들이 함께 나무를 심었다. 중국인 쩡수루(21)씨는 한·중 공공외교대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동방풍래만안춘(東方風來滿眼春·동쪽에서 바람이 부니 눈에 봄이 가득하다)이라는 말을 들어 동북아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12일 오후 중국 광저우의 한 호텔에서 한·중 청년 대표 각 5명이 양국 관계 발전과 동북아 평화 등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이 중국, 오른쪽이 한국 대표단. 광저우=외교부 제공

12일 오후 중국 광저우의 한 호텔에서 한·중 청년 대표 각 5명이 양국 관계 발전과 동북아 평화 등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이 중국, 오른쪽이 한국 대표단. 광저우=외교부 제공

청년들은 충칭에선 2, 3대째 현지에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만났다. 광복군 제 1대 비서이자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이달 선생의 장녀 이소심 선생(80)은 “한국 임시정부가 27년 유랑을 했는데 그때 중국 정부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이런 우의를 잊지 않고 앞으로도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광저우에서 청년들을 위해 피아노로 아리랑과 3·1운동의 노래를 연주한 재중교포 피아니스트 두닝우(53)씨도 운암 김성숙 선생과 두쥔후이(杜君慧) 선생 부부 사이의 장손이다. 두씨는 “아버지가 6살 때 집에 약산 김원봉 선생이 외국과자를 사오셨다고 한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국민대표단에도 유공자 후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의 손녀인 조혜인(25)씨는 “치열한 노력의 결실로 광복을 맞고도 끝내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중우호카라반 국민대표단은 17일 상하이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단장인 외교부 공공문화외교국 서은지 심의관은 “앞으로 100년을 향해 가는 길에 한·중 청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상호존중과 이해로 윈윈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충칭·광저우·창사=외교부공동취재단,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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